본문 바로가기
글모음/좀 다른 나만의 미니멀리스트의 길

#5 모카포트 정착기 (vs 핸드드립 vs 커피머신)

by 달슬 2021. 1. 5.
반응형

대학생 때는 커피는 입에 전혀 대지 않던 시절, 커피 먹는 사람들을 보며 왜 저런 쓴맛 나는 걸 먹는지 궁금하곤 했다. 카페인이 잘 받지 않는 몸이라 각성효과를 거의 받지 못했기에 커피는 내게 그저 쓴 물에 불과했다. 꼭 커피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카라멜 마끼아또나 바닐라라떼 같은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마시곤 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간 이후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바로 커피를 마시긴 시작한 건 아니다. 우리 부서에는 아침마다 모든 부서원 커피를 타 주시는 멋진 분이 계셨는데, 나는 그 당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기 전이라 나를 위해 커피 말고 차를 타 주시곤 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입사 3년 차쯤부터이다. 부서 이동, 부서원, 업무로 인한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속이 자주 답답해지곤 했다. 잠시 밖으로 나가 추운 겨울날의 공기를 마셔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 근처 카페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동안 쓰게만 느껴졌던 커피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인생이 참 쓰지 않나고, 마치 나처럼.

 

나는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커피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에는 사서만 먹다가 좀 더 편하게 먹기 위해 집 안으로 커피 기구를 차차 들이게 되었다. 제일 먼저 들인 것은 핸드드립 기구이다. 원두를 갈아 뜨거운 물을 내려 마시는 방식으로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아메리카노 1~2잔 내리는데 시간도 적게 걸린다. 단점은 에스프레소 추출이 불가하다는 점과, 맛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 3인분 이상부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물 온도 조절도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핸드드립은 단순해 보이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핸드드립 특유의 간편성 덕분에 빠르게 커피를 내려야 하는 경우에는 핸드드립을 자주 애용한다. 하지만 물 온도, 양 조절, 내리는 속도와 같은 요소들을 잘 조절하여 맛 좋은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기에 혼자 마실 때는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당근마켓을 통해 집에 드롱기 커피머신을 들이게 되었다.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 2샷을 추출 가능하며, 우유 거품도 낼 수 있다. 드립커피가 아메리카노만 내릴 수 있는 거에 비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으면, 이를 이용해 모든 종류의 커피를 만들 수 있다. 기계가 커피를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맛도 일정하고 훌륭하다.

 

단점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 안 그래도 좁은 주방인데 주방 한 구석을 또 얘한테 내줘야 한다. 경쟁자로는 밥솥, 전자레인지, 정수기, 도마, 식기 거치대 등이 있겠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드롱기 커피머신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커피를 추출 후 커피 찌꺼기를 털 때 트래거(손잡이 달린것)과 필터(스테인레스로 된 것)가 무조건 빠진다. 1샷 필터, 2샷 필터 모두 그렇다. 그래서 카페에서처럼 커피 찌꺼기 통에 휙 털어 정리를 끝낼 수 없고, 숟가락으로 퍼서 버려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물이 나오는 배수관에도 커피 가루가 묻기 때문에 커피 추출 후 국그릇 같은 걸 놓고 물만 나오게 하여 커피가루를 물로 씻어 내려줘야 한다. 물탱크도 물때가 잘 끼므로 종종 닦아줘야 하는 건 기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내릴 수 있는 건 핸드드립과 똑같은 2샷(아메리카노 2잔)에 관리는 더 번거로워 요즘은 스팀밀크 만드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한동안 잘 안 썼더니 와이프가 다시 당근마켓에 내놓고 그 자리에 식기세척기를 들이려고 눈독 들이고 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중요하다. 에스프레소만 있으면 모든 종류의 커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다음에 구입하게 된 것이 모카포트이다.

 

모카포트는 비알레띠 제품이 유명한데,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주로 이를 이용해 커피를 내린다고 한다. 내가 구입한 건 4인용인데, 한 번에 에스프레소 4샷을 추출할 수 있어 커피를 자주 먹는 우리 가족에게 매우 편리하다. 손님이 많이 왔을 때도 좋고.

 

모카포트를 처음 이용하면 커피가 끓어 넘치기도 하고, 커피 분쇄 정도를 조절하지 못해 커피 맛이 이상한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문제 전혀 없이 최고의 커피 맛을 매일 향유하고 있다. (엔코 그라인더 기준 분쇄도 17로 놓고 원두를 갈고, 2샷 추출 시에는 물 120ml, 4샷 추출 시에는 물 180ml를 넣으면 끝장이다.)

 

부품도 간소하여 뒤처리가 편하고, 커피 찌꺼기를 숟가락으로 퍼서 버리는 건 드롱기 커피머신을 쓰며 적응되었다. 단점으로는, 한 번에 4샷 내린 이후에 보일러(아래 검은 부분, 물이 담긴 곳)를 열려면 내부 온도가 많이 식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찬 물을 오랫동안 겉면에 부어줘야 하고, 그럼에도 워낙 내부 압력이 커서 잘 열리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소재가 알루미늄이라 세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점이 있으나, 무쇠팬인 롯지도 시즈닝 하며 잘 쓰고 있는 내게 이는 단점이 아니다.

 

모카포트는 인테리어에도 좋고 공간도 적게 차지하며 커피 맛도 좋다. 이렇게 모카포트에 정착하게 되었고, 매일 하루를 모카포트로 끓여낸 커피와 함께 시작하고 있다.

 

집에서 최고의 커피를 먹기 위한 나의 시행착오가 집에 물건을 적게 들이되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은 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입맛은 사람마다 다 다르며, 드롱기 커피머신보다 더 좋은 커피머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모카포트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든지 본인에게 잘 맞는 것이 최고다. 남의 의견은 참고만!

반응형

댓글